존 윌리엄스 ②: 슈퍼맨의 나팔 소리와 마지막 아날로그 장인
슈퍼맨이 하늘로 솟구칠 때, 어떤 음악이 들려야 하는가. 그 질문 앞에서 40년 넘게 모든 답은 결국 하나로 돌아왔다. 존 윌리엄스.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트럼펫 한 방으로 '정의'를 정의한 《슈퍼맨》 마치의 탄생
- 계승 vs 극복: 《슈퍼맨 리턴즈》와 《맨 오브 스틸》의 두 갈래 길
- 아날로그 장인 vs 디지털 혁신가: 한스 짐머와의 비교
- 엔니오 모리코네와 영화 음악의 양대 산맥
- 5번의 아카데미, 25개의 노미네이트, 그리고 연필 한 자루
트럼펫 세 음이 '정의'가 된 날: 《슈퍼맨》(1978)
1978년, 영화 포스터에는 이런 카피가 붙었다. "You'll believe a man can fly." 남자가 날 수 있다고 믿게 하겠다는 선언. 리처드 도너 감독은 CGI도 없던 시절, 크리스토퍼 리브를 스크린에서 진짜로 날게 만들어야 했다.
그 '믿음'을 만든 건 특수효과가 아니었다. 음악이었다.
존 윌리엄스가 쓴 슈퍼맨 메인 마치는 이렇게 시작된다. 트럼펫이 짧게 세 번 울린다. "빠—빠-빠!" 그 다음 순간, 현악기와 금관악기 전체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단 3초 만에 누군가는 주먹을 쥐고, 누군가는 눈물을 글썽인다. 거의 반사적인 반응이다.
왜 이 음악은 이토록 강렬한가.
음악학자들은 이 테마가 장조의 행진곡 리듬 위에 구축된 상승하는 멜로디 라인을 사용한다고 분석한다. 음이 계속 올라가는 구조는 뇌에 '상승', '비행', '해방'의 감각을 직접 심어준다. 거기에 트럼펫이라는 악기 선택이 결정적이다. 트럼펫은 서양 음악에서 오랫동안 '군주의 도래', '승리', '신의 소식'을 알리는 악기였다. 모차르트도, 베토벤도, 브람스도 가장 중요한 순간에 트럼펫을 썼다. 윌리엄스는 그 수천 년의 음악적 DNA를 활용해 슈퍼맨을 고전적 영웅 서사에 연결시킨 것이다.
이 음악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문제가 됐다. 후대의 감독과 음악가들에게 절대로 넘을 수 없는 산이 되어버린 것이다.
계승의 길: 《슈퍼맨 리턴즈》(2006)
2006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슈퍼맨을 스크린으로 되살리기로 했다. 그런데 음악 앞에서 그는 오랫동안 고민했다. 새 음악을 쓸까, 아니면 윌리엄스의 오리지널을 이어받을까.
결론은 계승이었다. 음악 감독 존 오트먼은 윌리엄스의 1978년 테마를 거의 원형 그대로 가져왔다. 새 화음으로 편곡하고, 현대적인 사운드로 다듬었지만, 그 DNA는 고스란히 살아있었다. 영화가 개봉했을 때 메인 테마가 흐르자 관객들은 28년의 공백을 순식간에 잊었다. 어린 시절 극장에서 그 음악을 처음 들었던 기억이 살아 돌아오는 경험. 이것이 윌리엄스 테마가 가진 '시간 초월적 효력'이었다.
오트먼의 선택에 대해 비평가들은 갈렸다. '진정한 영리한 경의 표시'라는 평가와 '새로운 시도 없이 과거에 기댄 것'이라는 비판이 엇갈렸다. 하지만 관객은 달랐다. 그 메인 테마가 흐르는 순간, 영화관이 하나가 됐다. 음악이 세대를 연결한 것이다.
극복의 길: 《맨 오브 스틸》(2013)
7년 뒤, 잭 스나이더 감독과 한스 짐머는 정반대의 길을 택했다.
짐머에게 주어진 미션은 명확했다. "윌리엄스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라." 짐머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존 윌리엄스가 쓴 음악을 다시 쓸 수 없어요. 그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완전히 다른 슈퍼맨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 결과물이 'Flight' 였다. 금관악기의 화려함 대신 피아노의 서정적인 단음. 영웅의 개선가 대신 고뇌하는 청년의 내면 독백. 아버지 조르-엘을 잃은 슬픔,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혼란, 지구인도 크립톤 인도 아닌 존재의 외로움. 짐머의 슈퍼맨은 화려하게 하늘을 날기 전에 먼저 땅에서 울었다.
음악적 완성도만 놓고 보면, 두 곡 모두 걸작이다. 하지만 '어떤 슈퍼맨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두 음악은 완전히 다른 답을 낸다.
| 구분 | 윌리엄스 (1978) | 짐머 (2013) |
|---|---|---|
| 핵심 악기 | 트럼펫, 금관악기 | 피아노, 타악기 |
| 감성 | 승리, 희망, 영웅주의 | 고뇌, 성장, 인간성 |
| 슈퍼맨상 | 완성된 영웅 | 영웅이 되어가는 인간 |
| 시대 반영 | 낙관적인 1970년대 | 복잡한 2010년대 |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 이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슈퍼맨이 하늘로 솟구칠 때 어떤 음악이 흘러야 하는가. 그리고 2025년 제임스 건 감독의 《슈퍼맨》에는 또 어떤 음악이 쓰일까. 할리우드가 새 슈퍼맨 영화를 만들 때마다 이 질문은 반복될 것이다. 그것이 윌리엄스의 테마가 남긴 영원한 유산이다.
세기의 대결: 존 윌리엄스 vs 한스 짐머
현대 영화 음악을 이야기할 때 이 두 이름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두 사람이 완전히 다른 방법론으로 각자의 정점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작업 방식
존 윌리엄스는 연필과 오선지로 작업한다.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다. 머릿속에서 완성된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상상하며 손으로 음표를 그린다. 악보가 완성되면 그걸 오케스트라가 연주한다. 클래식 작곡가들이 수백 년 동안 해온 바로 그 방식이다.
한스 짐머는 그 반대편에 있다. 그의 스튜디오 리모트 컨트롤 프로덕션에는 수십 명의 음악가와 사운드 엔지니어가 협업한다. 신디사이저, 샘플러, DAW(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그에게 악기는 악기가 아니라 사운드 팔레트다. 《다크 나이트》의 그 긁히는 듯한 금속음, 《인터스텔라》의 파이프 오르간 굉음, 《덩케르크》의 초침 소리로 만든 긴장감. 이 모든 것은 기존 클래식 오케스트레이션으로는 불가능한 사운드 디자인의 영역이다.
'이 음악, 어떤 악기인지 구분이 안 된다' 싶으면 → 짐머 스타일
철학의 차이
윌리엄스는 음악이 이야기를 선도한다고 믿는다. 캐릭터마다 테마를 부여하고, 그 테마를 변주하며 이야기의 감정선을 이끈다. 관객이 음악을 '듣는' 경험.
짐머는 음악이 영상 안으로 녹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악이 배경이 되어 영상의 감각을 증폭시키는 것. 관객이 음악을 '느끼는' 경험.
어느 쪽이 옳은가? 물론 정답은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이 두 스타일이 공존하며 현대 영화 음악을 더 풍부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다른 거인과의 대면: 엔니오 모리코네
존 윌리엄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또 한 명의 거인,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 두 사람을 비교하는 건 마치 비틀즈와 롤링스톤즈를 비교하는 것처럼 불가능하지만, 동시에 멈출 수가 없다.
모리코네는 《석양의 무법자》, 《미션》, 《시네마 천국》, 《헤이트풀 에잇》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통해 서부극, 종교 드라마, 낭만 멜로, 스릴러 등 장르를 넘나드는 독창성을 보였다. 그의 음악은 종종 '이게 영화 음악인가?' 싶을 만큼 실험적이다. 휘파람, 전기 기타, 여성 보이스, 총소리를 음악 속에 녹여낸 그의 사운드는 전통 오케스트레이션의 경계를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반면 윌리엄스는 전통 오케스트레이션의 정수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모리코네가 악기의 경계를 무너뜨렸다면, 윌리엄스는 그 경계 안에서 가능한 모든 아름다움을 끌어냈다. 두 사람 모두 각각의 방식으로 '영화 음악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존중했다. 모리코네가 2007년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을 때 시상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였고, 윌리엄스는 객석에서 기립박수를 보냈다. 거인들의 인사였다.

숫자로 보는 존 윌리엄스의 경력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5회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54회 (2위 월트 디즈니와 큰 격차로 역대 1위)
그래미 수상: 25회
골든글로브 수상: 4회
BAFTA 수상: 7회
작곡한 영화: 100편 이상
현재 나이: 93세 (2026년 기준)
작업 방식: 연필과 오선지
컴퓨터 사용 여부: 없음
54번의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이게 얼마나 대단한 숫자인지 비교해보자. 영화 역사상 가장 많이 노미네이트된 배우는 메릴 스트립으로 21번. 윌리엄스는 배우들이 평생 받을 노미네이트의 두 배 이상을 혼자서 달성했다.
왜 그는 지금도 연필을 손에서 놓지 않는가
존 윌리엄스는 컴퓨터를 쓰지 않는다. 스마트폰도 없다. 그는 지금도 오선지에 연필로 음표를 그린다. 머릿속에서 100명이 넘는 오케스트라의 각 파트 소리를 동시에 상상하며, 그것을 손으로 받아 적는다.
주변에선 종종 묻는다. "왜 컴퓨터를 안 써요? 훨씬 빠를 텐데요." 그의 대답은 이렇다.
"컴퓨터로 재생해보면 항상 내가 원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내 머릿속에 있는 소리를 컴퓨터가 정확히 재현하지 못해요. 그래서 저는 악보만 씁니다. 진짜 악기를 연주하는 진짜 사람들이 그 악보를 보고 연주할 때, 비로소 내가 상상했던 소리가 나옵니다."
이것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다. 그의 음악이 50년 동안 '진짜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아니라 사람의 손과 숨결로 만들어진 소리. 바이올리니스트의 활이 현을 긁는 미세한 떨림, 플루티스트가 숨을 들이쉬는 순간의 짧은 정적, 트럼펫 주자가 힘껏 불어낼 때의 금속 공명. 이 모든 '인간의 소리'가 윌리엄스 음악을 듣는 사람의 심장과 공명한다.
마지막 콘서트를 향해: 93세의 현역
2024년, 존 윌리엄스는 자신의 '마지막 콘서트 투어'를 언급했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서서히 마무리를 준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 5편의 음악을 완성했고, 바이올리니스트 앤 조피 무터를 위한 협주곡을 작곡했다. '마지막'이라고 말하면서도 손은 계속 오선지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스필버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존의 음악이 없는 내 영화는 생각할 수가 없어요. 그는 내 영화에 영혼을 불어넣었습니다." 50년 우정의 소감이라기엔 담담하지만, 그 무게가 느껴지는 말이다.
마치며: 연필 한 자루가 남긴 것들
존 윌리엄스가 은퇴하는 날, 세상은 아마 하나의 시대가 끝났다고 말할 것이다. 전통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영화 음악의 정점을 찍은 마지막 거인. 컴퓨터 없이 100명의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마지막 아날로그 장인.
하지만 그의 음악은 사라지지 않는다. 스타워즈 메인 테마는 앞으로도 100년 동안 극장에서 울릴 것이고, 슈퍼맨 마치는 다음 세기의 어린이들도 학교 운동장에서 흥얼거릴 것이다. 죠스의 두 음표는 아직도 수영장에서 장난을 치는 데 쓰이고 있고, 쉰들러 리스트의 바이올린 선율은 아직도 홀로코스트를 처음 배우는 청소년들의 눈에서 눈물을 빼낸다.
오늘 퇴근길, 이어폰을 꽂고 슈퍼맨 테마를 틀어보자. 평범한 골목길이 순식간에 메트로폴리스의 빌딩 숲으로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존 윌리엄스가 연필 한 자루로 만들어낸 마법이다.
이 글은 시리즈의 2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