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나다 — 스탤론과 로키의 위대한 승부수
아는 척하기 딱 좋은

내 시나리오의 주인공은 나다 — 스탤론과 로키의 위대한 승부수

· 9분 읽기

우연히 다시 들은 Gonna Fly Now 한 소절에 이 글을 쓰게 됐다. 트럼펫이 울리는 그 순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단돈 100달러, 개까지 팔아야 했던 스탤론의 밑바닥 시절
  • 척 웨프너와 무하마드 알리 — 로키를 탄생시킨 실제 경기
  • 35만 달러를 거절한 이유, 그리고 버커스와의 재회
  • 스테디캠과 계단 장면 — 영화사를 바꾼 72개의 계단
  • Gonna Fly Now의 탄생 비화 — 아내 동료들이 공짜로 부른 노래
  •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과 로키 시리즈의 궤적

밑바닥의 남자

1975년의 실베스터 스탤론은, 솔직히 말하면 잊혀가는 중이었다.

할리우드의 무명 배우. 수중엔 단돈 100달러. 전기는 끊기기 일쑤였고, 아내의 패물을 팔아야 할 지경이었다. 결국 그는 자신의 분신 같던 불독 '버커스(Butkus)'를 40달러에 낯선 사람에게 넘겨야 했다. 사료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훗날 스탤론은 그 순간을 "내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날 중 하나"라고 회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TV 앞에 앉았다.


척 웨프너와 한 남자의 각성

1975년 3월 24일, 오하이오주 리치필드. 무명 헤비급 복서 척 웨프너(Chuck Wepner) 가 당대 최강 무하마드 알리와 링 위에 섰다.

척 웨프너 vs 무하마드 알리

누가 봐도 결과가 뻔한 경기였다. 웨프너는 기술도, 풋워크도, 명성도 없었다. 별명은 '베이욘의 출혈자(The Bayonne Bleeder)'. 어딜 가나 지고 피 흘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9라운드에 기적이 일어났다. 웨프너의 오른쪽 보디훅이 알리를 맞혔고, 알리가 링 위에 쓰러졌다. 현역 통산 다운을 손에 꼽을 정도였던 알리가. 웨프너는 결국 15라운드 종료 19초를 남기고 TKO로 패했다. 코뼈가 부러졌고 두 눈에서 피가 흘렀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버텼다.

TV 앞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던 스탤론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단 3일 만에 초고가 완성됐다.

💡 정보 척 웨프너는 훗날 로키가 자신을 모티브로 만든 영화라며 소송을 제기했고, 스탤론은 이를 부정하지 않고 2003년 합의로 마무리했다. 웨프너의 실화는 2016년 영화 <척(Chuck)>으로도 만들어졌다.

35만 달러를 거절한 남자

시나리오를 읽은 제작사들은 열광했다. 판권 제안이 쏟아졌다. 한 제작사는 당시 거액인 35만 달러를 제시했다. 조건은 단 하나 — 주연을 로버트 레드포드, 알 파치노, 제임스 칸 같은 스타로 교체할 것.

스탤론은 거절했다.

당장 굶어 죽을 처지였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내가 로키가 아니라면 이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결국 제작비 삭감과 낮은 출연료를 감수하는 조건으로 그는 자기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되었다.

계약서에 사인한 날,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버커스를 팔았던 그 남자를 찾아가는 것이었다. 개를 되찾기 위해 스탤론은 그 남자에게 무려 15,000달러와 영화 카메오 출연 기회를 제시했다고 한다. 버커스는 영화에 실제로 출연했다. 록키의 반려견으로.

버커스와의 추억

72개의 계단과 스테디캠의 탄생

총 제작비 약 110만 달러. 촬영 기간 28일. 저예산도 이런 저예산이 없었다.

그런데 이 궁핍한 현장에서 영화사를 바꾼 장면이 탄생했다. 록키가 새벽 필라델피아 거리를 달려 미술관 계단 72개를 뛰어오르는 그 장면. 오늘날 전 세계 여행객들이 직접 그 계단을 뛰어오르며 사진을 찍는 바로 그 장면이다.

72개의 계단

이 장면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당시 막 발명된 스테디캠(Steadicam) 이었다. 발명가 개릿 브라운(Garrett Brown) 이 직접 조작한 이 장비는 촬영자가 달리고 계단을 오르내려도 화면이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영상을 만들어냈다. 록키와 함께 뛰는 듯한 몰입감, 그게 스테디캠의 첫 번째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후 스테디캠은 <샤이닝>, <대부> 등 수많은 명작을 통해 영화 촬영의 표준으로 자리잡는다.


Gonna Fly Now — 아내 동료들이 공짜로 부른 노래

그 유명한 트럼펫 선율, Gonna Fly Now. 작곡가는 빌 콘티(Bill Conti).

그런데 이 곡의 탄생 배경은 영화만큼이나 허름하다. 저예산 영화였던 만큼 음악에도 돈이 없었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그 코러스를 부른 사람들은 다름 아닌 빌 콘티의 아내 회사 동료들이었다. 공짜로. 그들은 장난인 줄 알고 불렀다고 한다.

빌 콘티 역시 당시엔 무명이었다. 로키가 대박을 치면서 Gonna Fly Now1977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고, 아카데미 주제가상 후보에도 올랐다(수상은 하지 못했다). 이후 그는 중견 영화음악 작곡가로 이름을 알리며, 몇 년 뒤 <필사의 도전(The Right Stuff)>으로 로키에서 놓쳤던 오스카 트로피를 받게 된다.

빌 콘티는 로키 발보아(2006)까지 시리즈 전 편의 음악을 맡았다. 그리고 그날 공짜로 노래를 불렀던 그 아마추어들은, 지금도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


아카데미의 반란

1977년, 제49회 아카데미 시상식.

110만 달러짜리 저예산 영화 로키는 작품상, 감독상, 편집상 3관왕을 차지했다. 전 세계 흥행 수익은 2억 2,500만 달러. 제작비의 200배가 넘는 수익이었다.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같은 해 경쟁작은 <택시 드라이버>, <네트워크>, <올 더 프레지던트 맨>이었다. 쟁쟁한 작품들을 제치고 록키가 작품상을 가져가자 비평가들은 당황했지만, 관객들은 환호했다.


시리즈의 궤적 — 로키에서 크리드까지

제목 연도 핵심 대결
1편 록키 1976 록키 vs 아폴로 크리드
2편 록키 2 1979 록키 vs 아폴로 크리드 (리매치)
3편 록키 3 1982 록키 vs 클러버 랭 (미스터 T)
4편 록키 4 1985 록키 vs 이반 드라고 (냉전의 은유)
5편 록키 5 1990 록키 vs 토미 건
6편 록키 발보아 2006 노년의 록키, 마지막 한 방
7편 크리드 2015 아도니스 크리드 vs 피티 콘랜
8편 크리드 2 2018 아도니스 크리드 vs 빅터 드라고
9편 크리드 3 2023 아도니스 크리드 vs 데미안 앤더슨

록키 4는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었다. 냉전이 극에 달했던 1985년, 소련 복서 이반 드라고(돌프 룬드그렌)와의 대결은 미소 갈등의 축소판이었다. 록키의 승리에 소련 관중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장면은 프로파간다로 읽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노골적이었지만, 전 세계는 그것에 환호했다.

록키 4

크리드 시리즈는 바통을 넘긴다. 록키의 오랜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아폴로 크리드의 아들 아도니스가 주인공이 되고, 이제 록키는 코너맨으로 뒷자리에 선다. 나이 든 스승이 젊은 제자에게 무언가를 전하는 이 구도는, 스탤론 본인의 세월을 그대로 담고 있다.


마치며

"중요한 건 얼마나 세게 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맞으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느냐다."

로키가 거의 50년 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그게 영화의 대사가 아니라 스탤론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굶주림 속에서 쓴 시나리오, 거절당한 수십 번의 문, 35만 달러를 뿌리친 고집, 팔아버린 개를 다시 찾아온 집념. 스크린 위의 록키가 울리는 게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알고 나서야 비로소 울린다.

오늘 밤, Gonna Fly Now를 다시 틀어보자. 그리고 그 트럼펫 소리 뒤에 있는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어쩌면 당신의 가슴 속 어딘가에도 아직 계단을 오르고 싶은 록키 한 명이 살고 있을지 모른다.

야근반장

야근반장

고된 업무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틈틈이 영화, 게임, 여행을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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