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①: 뉴욕 소년이 우주를 작곡하기까지
그는 우주를 본 적이 없다. 외계인을 만난 적도, 상어에게 쫓긴 적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연필 한 자루로 우리를 우주로 데려가고, 깊은 바다 속 공포를 심장 박동으로 옮겨놓을 수 있었을까.
이 글에서 다루는 내용
- 재즈 연주자 집안에서 클래식 대가가 탄생한 아이러니한 성장기
- 줄리아드에서 TV 스튜디오까지, 무명 시절의 생존 전략
- 스티븐 스필버그와의 50년 우정이 만들어낸 화학 반응
- 단 두 개의 음표로 공포 영화의 문법을 바꾼 《죠스》의 탄생
- 전자음악 전성기에 90인조 오케스트라를 들고 나타난 《스타워즈》의 빅뱅
재즈 피아니스트의 아들, 클래식을 꿈꾸다
1932년, 뉴욕 플러싱. 존 토머스 윌리엄스는 재즈 드러머이자 라디오 쇼 뮤지션인 아버지 조니 윌리엄스 아래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집 안 가득 음악이 흘렀다. 아버지가 틀어놓는 빅밴드 사운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스윙 재즈. 훗날 그가 영화 음악에서 보여주는 폭넓은 장르 흡수력은 이 시절 귀로 들이킨 것들의 총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소년 존은 엉뚱하게도 클래식에 빠져들었다. 쇼팽, 라흐마니노프, 스트라빈스키. 아버지가 연주하는 드럼 대신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악보를 파고들었다. 열여섯 살, 가족이 LA로 이사하면서 그는 노스할리우드 고등학교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했다.
졸업 후 그는 미 공군에 복무했다.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그가 선택한 곳은 뉴욕의 줄리아드 음악원.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하며 로사리오 스칼레로, 루카스 포스 같은 거장들에게 사사했다. 그런데 젊은 윌리엄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음악원을 나와서 어떻게 먹고 살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재즈 피아니스트로 취직하는 것이었다. 클래식 영재가 나이트클럽과 스튜디오 세션 연주자로 생계를 꾸린 것이다. 1950년대 LA로 돌아온 그는 MGM, 콜럼비아, 20세기 폭스 같은 스튜디오에서 세션 피아니스트로 일하며 수백 편의 영화 녹음에 참여했다. 화면 밖에서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연주하면서, 그는 속으로 악보를 공부하고 있었다. 언젠가 자신의 이름이 그 악보 위에 적힐 날을 기다리며.
무명의 10년: 스크린 뒤에서 음악을 배우다
1950년대 말~60년대 초, 존 윌리엄스는 서서히 작곡가로 발을 넓혀갔다. TV 시리즈 음악을 쓰기 시작했고, 그 중 《Gilligan's Island》, 《Lost in Space》 같은 인기 시리즈의 테마를 담당하며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금 들어도 유쾌한 《Lost in Space》 테마는 우주 SF의 고전적인 사운드를 정립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시기를 단순한 '수련기'로 보기엔 그 폭이 너무 넓다. 그는 재즈, 오케스트레이션, 전자 음악, 팝, 클래식을 가리지 않고 흡수했다. 당시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은 음악 감독이 짧은 시간 안에 엄청난 분량을 소화해야 하는 구조였다. 지금의 넷플릭스 시리즈처럼 에피소드마다 새로운 음악이 필요했고, 그 압박 속에서 윌리엄스는 '빠르게 쓰되 대충 쓰지 않는' 능력을 몸에 익혔다.
극장 영화로 무대를 넓힌 건 1960년대 중반부터다. 1967년 《Valley of the Dolls》, 1971년 《Fiddler on the Roof》 (피들러 온 더 루프)로 아카데미 각색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그를 세상에 알린 건 아직 오지 않았다. 그 결정적인 만남은 1974년에 찾아온다.
운명의 만남: 스필버그와 윌리엄스, 50년 파트너십의 시작
1974년, 젊은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첫 극장 개봉작 《슈가랜드 특급(The Sugarland Express)》을 준비하고 있었다. 음악 감독으로 존 윌리엄스를 추천받은 그는 처음엔 별 감흥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윌리엄스가 피아노 앞에 앉아 주제 선율을 즉흥으로 연주하는 순간, 스필버그는 직감했다. '이 사람이다.'
그 직감은 인류 역사에서 손꼽힐 만한 예술적 파트너십으로 이어졌다. 두 사람이 함께한 작품 목록은 그 자체로 20세기 후반 할리우드 역사다.
| 연도 | 작품 | 주요 수상 |
|---|---|---|
| 1975 | 죠스 (Jaws) |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
| 1977 | 미지와의 조우 |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
| 1981 | 레이더스 | 아카데미 노미네이트 |
| 1982 | E.T. |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
| 1993 | 쉰들러 리스트 | 아카데미 음악상 수상 |
| 1993 | 쥬라기 공원 | — |
| 1998 | 라이언 일병 구하기 | — |
| 2005 | 뮌헨 | — |
| 2011 | 워호스 | — |
| 2012 | 링컨 | — |
쉰들러 리스트에서 스필버그는 윌리엄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자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작곡가를 데려와야 할 것 같아." 윌리엄스는 잠시 침묵하다 답했다. "저도 알아요. 하지만 그들은 이 영화를 저만큼 사랑하지는 못할 겁니다." 그 영화의 메인 테마, 이츠하크 펄만의 바이올린 선율은 지금도 홀로코스트를 다룬 음악 중 가장 많이 회자된다.
두 음표의 기적: 《죠스》가 바꾼 공포 영화의 문법
1975년, 《죠스》가 개봉했을 때 세상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영화관에서 상어를 보기도 전에 이미 무서워지는 이 이상한 경험이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정답은 단 두 개의 음표였다. E와 F. 반음 차이의 두 음이 반복되며 점점 빨라지는 그 선율. "덤-덤, 덤-덤, 덤덤덤덤덤덤—"
스필버그는 처음 이 멜로디를 들었을 때 윌리엄스가 농담을 하는 줄 알았다고 한다. "이게 전부예요?" 윌리엄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입니다." 스필버그는 그 순간, 이 두 음표가 어떤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보다 강력하다는 걸 깨달았다.
음악 이론적으로 분석하면 이 테마는 반음계적 불협화음의 긴장을 이용한다. 조성이 불분명한 두 음의 반복은 뇌가 '해결'을 기다리게 만들고, 그 해결이 영원히 오지 않으면서 불안감이 쌓인다. 거기에 템포가 빨라질수록 긴박감은 기하급수적으로 증폭된다. 단순함이 곧 천재성이었다.
《죠스》는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블록버스터 시대의 개막을 알린 작품이었다. 그리고 윌리엄스의 음악은 그 상징이 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공포 영화들이 '위협을 예고하는 반복 모티프'를 사용하게 된 것은 전부 이 두 음표의 유산이다.
그리고 바로 2년 뒤, 그는 더 큰 것을 들고 왔다.
1977년의 빅뱅: 《스타워즈》와 오케스트라의 귀환
1977년은 영화 음악의 역사가 두 개로 나뉘는 해다. 《스타워즈》 이전, 그리고 이후.
당시 할리우드 영화 음악의 트렌드는 전자음악과 팝 사운드였다. 록 음악이 문화를 지배하고, 신디사이저가 오케스트라를 밀어내던 시절이었다. SF 영화라면 더더욱 전자음악이 어울린다는 게 상식이었다. 우주는 차갑고, 금속적이고, 인공적인 곳이니까.
조지 루카스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우주 서사시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먼 옛날, 저 멀리 우주에서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신화적이고, 영웅적이며, 인간적인 이야기. 그러니 음악도 그래야 했다.
루카스와 스필버그의 조언으로 연결된 윌리엄스는 악보를 들고 20세기 폭스 녹음 스튜디오에 나타났다. 그리고 90인조 오케스트라를 소집했다. 당시 제작진은 경악했다. 예산도, 상식도 맞지 않는 규모였다. 그러나 녹음 첫날, 스튜디오에 울려 퍼진 메인 테마를 듣는 순간 모두 할 말을 잃었다.
"빰-빰-빰-빠밤-빰!"
트럼펫이 먼저 치고 나오고, 현악기가 폭포처럼 쏟아지며, 팀파니가 심장을 두드리는 이 7음절의 선율. 단순하지만 웅장하고, 친숙하지만 새로운. 클래식 팬이라면 브람스와 홀스트의 향기를 느끼고, 팝 팬이라면 즉각적인 흥겨움을 느꼈다. 세대와 장르를 가리지 않는 보편성. 그것이 이 테마의 비밀이었다.
메인 테마 너머의 보석들
하지만 스타워즈 음악의 진정한 위대함은 메인 테마에만 있지 않다.
임페리얼 마치(The Imperial March, 1980) — 다스 베이더가 등장할 때 울려 퍼지는 이 곡은 '악당의 테마'라는 장르를 완성했다. 행진곡 리듬 위에 금관악기가 내뱉는 단호한 선율. 이 음악은 선율만 들어도 캐릭터의 성격이 그려지는 최고의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사례로, 음악 학교에서 교재로 쓰인다.
바이너리 선셋(Binary Sunset) — 루크 스카이워커가 타투인의 두 개의 태양을 바라보며 저 먼 우주를 꿈꾸는 장면. 호른의 서정적인 선율이 지평선 너머를 향한 그리움과 용기를 동시에 담아낸다. 이 2분 남짓의 음악은 "영웅이 되기 전의 영웅"을 묘사하는 데 있어 영화 역사상 가장 완벽한 음악으로 꼽힌다.
듀얼 오브 더 페이트(Duel of the Fates, 1999) — 프리퀄 3부작 《에피소드 1》에서 처음 등장한 이 곡은 윌리엄스가 단순한 클래식 재현자가 아니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혁신가임을 증명한다. 산스크리트어로 된 합창과 폭풍 같은 오케스트라가 뒤엉키는 이 곡은 스타워즈의 그 어떤 음악과도 다른 날카로움을 갖고 있다.
"역대 최고"라는 수식어가 붙기까지
1977년 《스타워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윌리엄스. 그런데 이 수상에는 작은 드라마가 있었다. 그해 경쟁 후보 중 한 명이 바로 자신의 지인이었는데, 그 작품은 다름 아닌 스필버그의 또 다른 영화였다. 윌리엄스는 스필버그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스티브, 내가 상을 받아도 되겠어?" 스필버그는 웃으며 답했다. "당연하지. 네가 더 잘했잖아."
이후 AFI(미국영화연구소)는 역대 최고의 영화 음악을 선정했고, 1위는 《스타워즈》였다. 2위 《미지와의 조우(Close Encounters)》을 제치고, 3위 《사운드 오브 뮤직》을 제치고. 단순히 인기 투표가 아니라 음악적 영향력, 오리지널리티, 지속성을 모두 고려한 평가였다.
그리고 지금, 《스타워즈》 메인 테마는 단순한 영화 음악이 아니다. 나사(NASA)가 우주선 발사 행사에서 틀고, 올림픽 개막식 입장 음악으로 쓰이며, 전 세계 어린이들이 입으로 흥얼거리는 '인류 공통의 멜로디'가 되었다.
마치며: 악보 한 장이 우주가 되는 순간
존 윌리엄스가 위대한 건 단순히 '유명한 멜로디를 많이 써서'가 아니다. 그는 음악으로 이야기를 쓴다. 임페리얼 마치가 흐르면 악의 위협이 느껴지고, 바이너리 선셋이 흐르면 청춘의 설렘이 되살아난다. 단 두 음표로 거대한 상어의 공포를 만들어낸 사람. 오케스트라 100명을 지휘해 우주의 빅뱅을 재현한 사람.
그가 연필로 오선지에 음표를 그을 때, 그 손끝에서 세계가 만들어진다.
다음 편에서는 또 하나의 신화, 트럼펫 세 음이 '정의(正義)'의 소리가 된 《슈퍼맨》 테마, 그리고 한스 짐머와의 세기의 대결, 그리고 93세의 노장이 지금도 연필을 놓지 않는 이유를 이야기합니다.
이 글은 시리즈의 1편입니다.